아래 글은 월간조선 2000년 5월호에 실렸던 원고로, 당시에는 지면 제약상 일부분밖에 소개시키지 못했던 내용을 인터넷에서는 Full Version으로 싣는다.
TOEFL은 쉬운 말로 '미국 유학 시험', TOEIC은 '취직 또는 승진 시험', TEPS는 '토플과 토익의 단점들을 보완한 시험'이라고 나는 표현하고자 한다. 1983년부터 지금까지 17년 동안 토플, 토익, 텝스를 직강해 오면서 귀가 따갑도록 많이 들어온 질문은, "어떻게 하면 영어 공부를 잘 할 수 있느냐?"라는 것이다. 남녀 노소를 불문하고 말이다. 한 마디로 "들려야 입이 떨어지고 들으려 한 量만큼만 들리게 되는" 자연의 법칙을 절감하지 못하고들 있다.
- 이익훈
17년 직강 경험
영어 천재
(1) 이 세상에서 영어를 제일 잘 한다는 영어 천재 앞에 두꺼운 영영 백과 사전을 갖다놓고서, 영어에 관한 한 뭐든지 물어보는 이색적인 퀴즈쇼가 열렸다. 그가 못 맞추면 벌금으로 문제 당 만원을 내고, 맞추게 되면 출제자가 백원 짜리 동전을 지불하게 되었다. 모두 10문제가 출제되었는데, 결과는, 출제자가 10만원을 번 것이 아니라 백원 짜리 동전 10개를 날리게 되었다.
zither
(2) 1964년 음력 설날, 고교 친구들이 몰려다니며 세배를 다닐 때 벌어진 일이다. 당시 친구 아버님께 내가 던진 질문은, 가장 힘들다고 생각되었던 'zither'란 단어였다. 친구 아버님께서는 즉석에서 'zither'란 'zitter'로도 쓸 수 있다며 백지에 거문고 비슷한 현악기를 그리시고는, 백원 짜리 동전을 달라고 손을 내미시며 나를 놀리셨다.
영어 동기
(3) 내가 영어를 본격적으로 좋아하게 된 동기는 그때부터였다. 자칭 영어 천재라는 친구 아버님처럼 영어를 잘 하는 것이 꿈이었었다. 그 친구 아버님의 뇌를 이식 받으면 그분과 똑같아질 테니까 영어는 항상 만점을 맞을 것이라고도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당시에는 뇌 이식 수술이 발달하지 않아 100점에 대한 나의 꿈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영어 공부에는 동기가 중요하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그 동기를 살려 내려는 꾸준한 노력이다.
왕따 카투사
(4) 카투사로 군복무 할 당시, 나는 외출이라고는 거의 하지 않았다. 남아도는 시간을 외출로 만끽하는 동료들과는 달리, 나는 부대 막사에 파묻혔다. 온갖 구설수와 오해도 따랐지만, 군부대 시설을 이용하기에 열중했고, 남는 시간을 가급적 GI들과 보내기를 자청했다. 끝내 나는 왕따를 당해 GI 막사의 "나홀로 카투사"가 되어야 했다. 하지만, 그 덕분에, 부대에서 상영되는 영화는 빠짐없이 즐겼고, 공작실에서 가능한 모든 기술을 배우게 되었다.
영어의 생활화
(5) 대학 졸업 후 미국 유학 시절, 교회에는 한번도 나가지 않았지만, 일요일이면 아파트에서 TV로 영어 설교를 하루종일 시청했다. 고교 동창회, 대학 동창회를 참석해본 기억도 없다. 가급적 한국 사람은 멀리하고, 미국 AM, 미국 FM, 미국 TV 방송만은 놓치지 않으려 했다. 이왕이면 영어와 함께 살려고 했다.
스포츠 영어
(6) 동아일보 기자 시절은 8년간의 미국 생활 중 극치였다. 미국 교포 사회 최초로 "미식축구(NFL) 시청 요령"과 "미 프로야구(MLB) 역사"를 연재하였으며, LA 다저스 구장에서 살다시피 했고, 타미라조다 감독, 해설가 빈 스컬리 등과의 특별 인터뷰, 당시 LA Rams의 치어리더들에 대한 특별 취재 등으로 종횡무진 뛰어다녔다. 취미를 살리되, 이왕이면 영어로 살리는 것이 더 유익하다는 생각이었다.
미국인의 약점 활용
(7) 스포츠 칼럼을 쓸 때만 해도, 당시 28개 팀으로 구성된 NFL과 26개 팀인 MLB의 스타 플레이어, 감독, 별명 등에 익숙해지기가 쉽지 않았다. 모르는 것이 너무도 많았다. 하지만, 다행히도 내게는 전화와 입이 있었다. 당시 LA Times에 Ted Green이라는 스포츠 Staff가 있었다. 한번도 만난 적이 없었지만, 무작정 전화를 걸어 자신을 소개하고 질문을 쏟아 부었을 때, 그는 너무나 속시원하고 친절하게 답변해주었다. 감격한 나는, 앞으로도 자주 질문을 해도 되느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의 대답은 "애니 타임!"이었다. 내가 "Any time? You sure?"라고 확인하자, 그는 "You bet!"이라고 대답했다. 그후부터 그는 나로부터 시도 때도 없는 무수한 전화 질문을 받았고, 때로는 새벽 시간도 예외가 아니었다. 미국인들은 전혀 꺼리지 않고 친절히 질문에 답해준다.
신문은 곧 독해
(8) 나는 미국 생활 8년 동안 단 하루도 LA TIMES 신문 읽기를 빠뜨린 적이 없다. 시사 주간지 TIME과 Newsweek도 정기 구독했음은 물론이다. 바쁘면 제목들만이라도 읽어야 안심이 될 정도였다. 스포츠 섹션은 필수였고, 연예란은 심심풀이였지만, 경제란만은 제목조차 싫어서 마지못해 읽었다. 그런데, 이들은 속독 훈련 매체로는 일품이다.
자투리 시간 활용
(9) 사전에 'janitor'는 '수위' 또는 '문지기'로 나와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밤에 일하는 건물 청소부'로 통하고 있다. 학창 시절, 나는 2년씩이나 janitor 일을 했다. 부모님 돈을 여유 있게 얻어 썼던 나로서는 돈 때문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친구를 도와주려던 것이었지만, 뉴스와 야구 때문에 본격적으로 그 일을 시작했다. 보통 저녁 6시에 시작해서 자정에 끝나는 6시간의 근무는 정말 신나는 시간이었다. CBS Radio와 KFWB라는 25시간 뉴스 채널이 있었는데, 매 30분마다 국내외 뉴스가 다양한 표현으로 전달되는 멋진 영어에 매료된 것이다. 특히, 야구나 미식축구 중계 때에는 피로 회복제가 되기도 했다. 영어 청취 비결의 하나는, 듣고 싶은 내용을 지속적으로 듣는 것과 자투리 시간을 100% 활용하는 것이다.
소수 민족은 별로
(10) 아랍 계통, 동양 계통, 남미 계통을 미국에서는 소수 민족이라고 한다. 이들과 영어 대화를 할 때 끈끈한 우정을 느끼게 된다. 거의 100% 알아듣고, 100% 제대로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토록 화기 애애한 분위기가, 갑자기 미국인이 등장하기만 하면 혀 꼬부라진 발음 때문에 눈앞이 캄캄해진다. 알고 보니, 내가 알고 있는 영어 능력이 그 소수 민족 사람들과 같은 수준의 영어로 떠드니 이해가 잘 될 수밖에 없던 것이었다. 서로가 모르는 단어는 쓰지 않으니 100% 이해와 돈독한 우정이 싹틀 수밖에 없다. 그 이후로는 소수 민족 친구들도 되도록 멀리 하게 되었다.
회화는 모방이다
(11) 1983년 11월, 8년만에 귀국한 후 얻은 첫 직업은 학원의 생활 영어 강사였다. 나는 지금도 12명 정원의 생활 영어 회화 수업은 반대하고 있다. 수십 명이 모여서 듣는 생활 영어 코스를 더욱 선호하고 있다. 강사 목소리를 앵무새처럼 따라하도록 시키는 것보다는 가급적 미국인의 녹음 테입을 큰 소리로 완벽하게 모방하도록 시키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다. 12명 정원제에서 대다수의 학생들은 한두 명의 튀는 학생들이 한시간 동안 설치는 것을 구경만 하는 들러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어휘는 Self-test
(12) 갑자기 어휘를 공부하고 싶은 욕구가 솟아 생활 영어 회화를 그만 두고 "Vocabulary 22,000"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영어 어휘는 누구도 피할 수 없는 한국인의 약점이다. 툭하면 밑줄 긋고, 무작정 몇 번이고 써가면서 암기하는데, 며칠 후 시험에서는 거의 몇 단어 밖에 건지지 못하는 비효율적인 학습법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나는 먼저 어원을 설명해 주고, 예문을 해설해 준 뒤, A4 용지를 어원과 예문으로 절반씩 나누도록 했다. 왼쪽에는 영어, 오른쪽에는 한글 번역의 형식으로 50문제를 출제한 다음, 한쪽을 가리고 다른 A4 용지에 정답을 써가면서 스스로 채점하는 방식(Self-test)을 채택했다. 그리고 수시로 pop test(졸지 시험)도 치렀다. 효과는 만점에서 조금 빠지는 99%였다.
쥐구멍은 곧 영어 실력 증강
(13) 어휘도 어느 정도 익혔기에 다음에는 TOEFL로 바꿔서 Listening(청취), Crammer(문법), Reading(독해) 세 분야를 모두 가르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강의 준비를 하느라 날밤 새우기가 일쑤였다. 모르는 것이 수시로 튀어나왔고, 예리한 질문들을 매끄럽게 답변하지 못 할 때는, 쥐구멍을 찾는 심정으로 일단 답변을 24시간을 연기시켜놓았다. 그런 날은 수북히 쌓인 참고 서적과 밤샘 씨름을 해야했다. 처음 공부를 시작하는 마음으로 닥치는 대로 연구하는 것이다. 선생이 연구할 때는 학생보다 몇 배나 더 공부하게 된다.
배움에서는 인격을 버려라
(14) 혼자 힘으로 해결이 안될 때는 소주 한 병을 사들고 대방동으로 달려간다. 나의 구세주이자 영어 천재이신 친구 아버님께서 알코올 중독자 수준이시기에 소주 한 병이면 영어 보물이 홍수를 이룬다. 그러나, 반가운 인사와 함께 온갖 욕설을 다 듣게 된다. 너 같은 놈이 무슨 영어를 가르치느냐, 미국 유학을 헛 다녀왔다, 학원 강사 집어쳐라 등의 온갖 핀잔과 욕설을 외에, 가끔은 주먹질까지 하셨다. 하지만, 나는 아버님의 명쾌한 해설을 듣기 위해 전혀 불평을 할 수가 없었다.
Puzzle은 순발력과 배경 지식의 보물
(15) 초창기에는 강의가 없는 낮 시간에 거의 매일 대방동을 찾아갔다. 한 달 후에는 일주일에 닷새에서 사흘로 줄었고, 두 달 후에는 일주일에 하루 이틀로 줄었고, 석 달 후에는 일주일에 한번 꼴로 줄어들게 되었다. 넉 달째부터는 오히려 아버님께서 전화로 독촉을 하셨다. 소주 좀 사오면 재미있는 영어를 가르쳐 주시겠다는 등등의 유혹(?)과 함께. 그 유혹이란 Crossword 퍼즐이었다. International Herald Tribune지에 나오는 Crossword는 세계적으로 가장 난해한 puzzle 중의 하나라고 하셨다. 그것을 10분만에 풀어내시는 모습을 감상하라는 것이었다. 그 후 나는, 매번 대방동을 찾을 때마다, 소주 한 병으로 들려주시는 영어 단어 배경 설명에 대한 새로운 감탄을 느끼게 되었다.
만화 영작은 최고의 영작 코스
(16) 대방동의 걸작품이라면 단연코 만화 영어가 최고였다. 고바우 영감, 두꺼비 등 주요 일간지에 연재되는 만화들의 초경량급 표현에 대해, 아버님처럼 명쾌하게 영작하시는 분을 평생 단 한 분도 못 보았다. 정말 천재적인 발상의 표현들이 줄을 이었다. 만화 영작이야말로 토플 L/C Part A의 핵심이자, 유머가 듬뿍 담긴 최상의 생활 영어 회화이다. 만약 지금 내가 갖고 있는 그토록 기발한 표현 방법을 어디서 배웠느냐고 묻는다면, 주저 않고 대방동 아버님이시라고 말하겠다. 너무도 완벽한 표현들에 매료되어 유사 표현을 몇 개씩 더 원할 때는 소주 두 명이면 OK였다. 미국 신문의 시사 만화 설명과 유사 표현 영작은 '황홀함' 그것이었다.
누구에게 배우느냐도 중요하다
(17) 1986년 11월 3일 '학생의 날'은 내게 가장 슬픈 날의 하나였다. 대방동 아버님께서 돌아가신 날이기 때문이다. 고교 동창생들 중 나를 가장 욕하셨고, 가장 많이 때리셨고, 가장 많이 사랑하셨고, 또 나를 가장 좋아 하셨다. 말년에는 망령이 심하셔서 정말 무수히 얻어맞았었다. 나의 영어 실력 향상은 1983년부터 1986년까지 3년 동안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돌아가시기 몇 달 전에 내게 하신 말씀이 기억난다. "가끔 내가 틀린 것을 네가 고쳐줄 때도 있으니, 그 정도면 이제 학원 강사라고 할만하다." 그날 가장 하염없는 눈물을 흘린 사람이 나라고 주위에서 말했다. 뇌 이식 수술이 이뤄지지 않은 것에 나는 지금 감사한다. 그것은 단기 완성이자 요행수에 불과하다. 요즈음도 영어가 막힐 때마다 나의 영원한 영어 스승님이신 대방동 아버님을 그리게 된다.
녹음기가 부서지도록
(18) 1983년 당시만 해도 녹음기가 무척 귀했다. 카투사 시절 미군 부대에서 형님께 사다드린 비싼 AIWA 녹음기를 임시로 빌려 학원 강의용으로 사용했다. 결국 6개월만에 고물상에 팔게 되었지만, 생활 영어 회화건, Vocabulary 22,000이건, 토플이건, 항상 그 녹음기를 사용했었다. 매 강의마다 10분 정도를 할애해서 AFKN 뉴스, 60 Minutes, ABC NIGHTLINE 등을 단골 메뉴로 강의해왔다. 녹음기 하나가 3개월을 버텨내지 못할 정도였고, 심지어 문법 문제조차 녹음으로 들려주었다. 모든 영어는 녹음하여 들려주고 읽히는 것이 최상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한가지에만 전념하라
(19) 영어의 주요 분야를 전반적으로 가르치면서, 나의 적성에 맞는 것은 Listening임을 느끼게 되었다. Listening만 가르치고 싶었으나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학원 강의 2년째가 되면서 학생 수가 수백 명으로 크게 는 상황에서, L/C 만을 고집한다면 결과는 뻔했기 때문이다. 주위에서는 한사코 말렸다. 조교들과 의논했을 때, 찬반으로 의견이 양분되었다. 결국, 나는 청취, 문법, 독해 종합반에서 L/C만을 강의하기로 중대 결단을 내렸다. 오전과 오후 합해서 18명으로 시작했다. 그로부터 다시 정상으로 복귀하는데 걸린 기간은 6개월이었다. 그 6개월 동안, 나는 청취에 관한 내 모든 것을 아낌없이 학생들에게 주어버렸다.
"AP 5분뉴스"는 청취 공포 해소제
(20) 토플 L/C를 잘하기 위해서는 역시 받아쓰기가 효과적이었다. 받아쓰기의 목적은 취약점 발견과 극복이다. 학원 강사 첫날부터 받아쓰기를 시켰고, 서울 올림픽 당시인 1988년에 극치를 이뤘다. 1991년에는 한국일보사 대강당에서 열린 제1회 받아쓰기 백일장에 500명이 참가했고, 1992년 한강 고수부지에서 열린 제2회 받아쓰기 백일장에도 500명이 참가했다. AFKN "AP 5분뉴스" 받아쓰기가 탄생한 것은 바로 이보다 몇 해 전인 1988년이다. 900단어를 5분 동안 떠들어대는 쾌속의 다양한 뉴스는 영어 청취에 대한 공포심을 제거해준다. 5∼6시간 걸리는 "AP 5분뉴스" 받아쓰기를 한번만이라도 해본 경험자들은 스스로 영어에 대한 가능성을 확인하게 된다.
토플과 토익의 차별화
(21) 1988년에는 자투리 시간에 TOEIC을 가르치기 시작했고, 드디어 1994년에 KBS TOEIC 1, 2, 3권을 출간하게 되었다. 토플이 미국 유학을 꿈꾸는 학생들의 영어 능력 평가 시험이라면, 토익은 직장인들 상대로 한 Business English라고 구분 지을 수 있다. 토플과 토익의 L/C 유형은 약간 차이가 있으나, 공부 방법상으로는 커다란 차이가 없다. 토익의 최대 약점은, 변별력이 약하여 점수와 영어 실력이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요령 하나로써 고득점 획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올바른 길잡이 연중무휴 토요무료특강
(22) 토요일이면 getaway weekend를 외치며 수많은 사람들이 경쟁적으로 교외로 빠져나간다. 대부분 재충전을 이유로 든다. 콩나물 시루 같은 도로의 수많은 차량과 인파 속에 묻혀서. 이들을 강의실로 끌어들이기 위해 나는 "연중무휴 토요무료특강"을 시작했다. 사람들이 강의가 마음에 들어 주말 약속을 취소하고 연기하거나 변경할 때, 나는 쾌감을 느낀다. 심지어는 날씨가 나쁜 경우 일요일에 강의해 주기를 바라는 경우도 있었다. 놀자판으로 향하는 발길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이 토요무료특강은 1988년에 시작되어 지금까지 10년이 넘도록 단 한번의 휴강 때문에 '연중무휴'라는 이름에 오점이 남아있다. 그것은 '정전' 즉 'blackout' 때문이었다.
부지런한 만큼 더 많이 배운다: SLC
(23) 하루 4시간 이상 잠을 잔다? 더구나 공휴일이나 일요일에? 안될 말이다. 하루 4시간의 수면이 가장 건강에 좋다는 의학 보고서를 읽은 적이 있다. "휴일 4시간 이상 잠자는 것은 눈뜨고 못 본다."라는 생활 철학 덕에 연중무휴 일요무료영화, 즉 SLC(Sunday Laser Club)라는 것이 1988년 탄생했다. 매주 일요일 '아침 7시 땡'이면 최신 Laser Disk 영화들의 감상 기회를 주자는 것이다. 학생들은 오전 10시를 줄기차게 요구하지만, 단호히 거부하고 있다. 시간이 남아돌아 모이는 100명의 학생보다는 진정 영화가 좋아 새벽 7시에 참석하는 50명의 뜻이 더 소중하기 때문이다.
상대를 아는 것이 핵무기
(24) 어느 토요무료특강 때였다. 미국 국가 가사의 배경을 설명하고 나서 힘차게 미국 국가를 합창했었다. 강의가 끝나고 30분쯤 후에 한 학생이 소주병을 들고 와서는, "왜 미국 국가를 가르치느냐"고 항의를 하는 것이다. 대꾸 없이 20분 동안 듣고 난 다음 대답했다. "넌 미국 유학을 꿈꾸며 내 토플 강의를 듣고 있어. 나는 너처럼 무조건 미국을 증오하지도 않고, 다른 사람들처럼 무조건 좋아하지도 않아. 영어라는 것 때문에 미국을 생각하고 있을 뿐이야. 미국을 알려면, 또 그들을 앞지르려면 그들에 대해 많이 알아야 될 것 아닌가?"라고. 이튿날부터 3년 동안 그는 조교로서 SLC를 관리하게 되었다.
인터넷 이용은 영어 성공의 지름길
(25) 신문, 잡지 등에 칼럼 쓰기, 그리고 방송 매체들과의 인터뷰 등은 공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된다. topic 선정 시에 인터넷을 뒤져보면 온갖 정보들에 대한 풍부한 자료들이 가득히 들어있다. 검색 과정에서 매번 느끼는 것은 모르는 것은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너무도 많이 모르니까 알아내 가는 재미가 생긴다는 것이다. 10년 전만 해도 신문과 잡지를 뒤적거리면서 지난 정보를 찾아내곤 했던 원시적인 방법을 생각해볼 때 감회가 새롭다. 요즘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정보를 구할 수 있다. 문제는 우리가 게으르다는 것과 과다한 정보로 인한 소화불량 때문에 이 정보들을 지식으로 소화해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TOEFL은 쉬운 말로 '미국 유학 시험', TOEIC은 '취직 또는 승진 시험', TEPS는 '토플과 토익의 단점들을 보완한 시험'이라고 나는 표현하고자 한다. 1983년부터 지금까지 17년 동안 토플, 토익, 텝스를 직강해 오면서 귀가 따갑도록 많이 들어온 질문은, "어떻게 하면 영어 공부를 잘 할 수 있느냐?"라는 것이다. 남녀 노소를 불문하고 말이다. 한 마디로 "들려야 입이 떨어지고 들으려 한 量만큼만 들리게 되는" 자연의 법칙을 절감하지 못하고들 있다.
- 이익훈
영어 천재
(1) 이 세상에서 영어를 제일 잘 한다는 영어 천재 앞에 두꺼운 영영 백과 사전을 갖다놓고서, 영어에 관한 한 뭐든지 물어보는 이색적인 퀴즈쇼가 열렸다. 그가 못 맞추면 벌금으로 문제 당 만원을 내고, 맞추게 되면 출제자가 백원 짜리 동전을 지불하게 되었다. 모두 10문제가 출제되었는데, 결과는, 출제자가 10만원을 번 것이 아니라 백원 짜리 동전 10개를 날리게 되었다.
zither
(2) 1964년 음력 설날, 고교 친구들이 몰려다니며 세배를 다닐 때 벌어진 일이다. 당시 친구 아버님께 내가 던진 질문은, 가장 힘들다고 생각되었던 'zither'란 단어였다. 친구 아버님께서는 즉석에서 'zither'란 'zitter'로도 쓸 수 있다며 백지에 거문고 비슷한 현악기를 그리시고는, 백원 짜리 동전을 달라고 손을 내미시며 나를 놀리셨다.
영어 동기
(3) 내가 영어를 본격적으로 좋아하게 된 동기는 그때부터였다. 자칭 영어 천재라는 친구 아버님처럼 영어를 잘 하는 것이 꿈이었었다. 그 친구 아버님의 뇌를 이식 받으면 그분과 똑같아질 테니까 영어는 항상 만점을 맞을 것이라고도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당시에는 뇌 이식 수술이 발달하지 않아 100점에 대한 나의 꿈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영어 공부에는 동기가 중요하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그 동기를 살려 내려는 꾸준한 노력이다.
왕따 카투사
(4) 카투사로 군복무 할 당시, 나는 외출이라고는 거의 하지 않았다. 남아도는 시간을 외출로 만끽하는 동료들과는 달리, 나는 부대 막사에 파묻혔다. 온갖 구설수와 오해도 따랐지만, 군부대 시설을 이용하기에 열중했고, 남는 시간을 가급적 GI들과 보내기를 자청했다. 끝내 나는 왕따를 당해 GI 막사의 "나홀로 카투사"가 되어야 했다. 하지만, 그 덕분에, 부대에서 상영되는 영화는 빠짐없이 즐겼고, 공작실에서 가능한 모든 기술을 배우게 되었다.
영어의 생활화
(5) 대학 졸업 후 미국 유학 시절, 교회에는 한번도 나가지 않았지만, 일요일이면 아파트에서 TV로 영어 설교를 하루종일 시청했다. 고교 동창회, 대학 동창회를 참석해본 기억도 없다. 가급적 한국 사람은 멀리하고, 미국 AM, 미국 FM, 미국 TV 방송만은 놓치지 않으려 했다. 이왕이면 영어와 함께 살려고 했다.
스포츠 영어
(6) 동아일보 기자 시절은 8년간의 미국 생활 중 극치였다. 미국 교포 사회 최초로 "미식축구(NFL) 시청 요령"과 "미 프로야구(MLB) 역사"를 연재하였으며, LA 다저스 구장에서 살다시피 했고, 타미라조다 감독, 해설가 빈 스컬리 등과의 특별 인터뷰, 당시 LA Rams의 치어리더들에 대한 특별 취재 등으로 종횡무진 뛰어다녔다. 취미를 살리되, 이왕이면 영어로 살리는 것이 더 유익하다는 생각이었다.
미국인의 약점 활용
(7) 스포츠 칼럼을 쓸 때만 해도, 당시 28개 팀으로 구성된 NFL과 26개 팀인 MLB의 스타 플레이어, 감독, 별명 등에 익숙해지기가 쉽지 않았다. 모르는 것이 너무도 많았다. 하지만, 다행히도 내게는 전화와 입이 있었다. 당시 LA Times에 Ted Green이라는 스포츠 Staff가 있었다. 한번도 만난 적이 없었지만, 무작정 전화를 걸어 자신을 소개하고 질문을 쏟아 부었을 때, 그는 너무나 속시원하고 친절하게 답변해주었다. 감격한 나는, 앞으로도 자주 질문을 해도 되느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의 대답은 "애니 타임!"이었다. 내가 "Any time? You sure?"라고 확인하자, 그는 "You bet!"이라고 대답했다. 그후부터 그는 나로부터 시도 때도 없는 무수한 전화 질문을 받았고, 때로는 새벽 시간도 예외가 아니었다. 미국인들은 전혀 꺼리지 않고 친절히 질문에 답해준다.
신문은 곧 독해
(8) 나는 미국 생활 8년 동안 단 하루도 LA TIMES 신문 읽기를 빠뜨린 적이 없다. 시사 주간지 TIME과 Newsweek도 정기 구독했음은 물론이다. 바쁘면 제목들만이라도 읽어야 안심이 될 정도였다. 스포츠 섹션은 필수였고, 연예란은 심심풀이였지만, 경제란만은 제목조차 싫어서 마지못해 읽었다. 그런데, 이들은 속독 훈련 매체로는 일품이다.
자투리 시간 활용
(9) 사전에 'janitor'는 '수위' 또는 '문지기'로 나와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밤에 일하는 건물 청소부'로 통하고 있다. 학창 시절, 나는 2년씩이나 janitor 일을 했다. 부모님 돈을 여유 있게 얻어 썼던 나로서는 돈 때문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친구를 도와주려던 것이었지만, 뉴스와 야구 때문에 본격적으로 그 일을 시작했다. 보통 저녁 6시에 시작해서 자정에 끝나는 6시간의 근무는 정말 신나는 시간이었다. CBS Radio와 KFWB라는 25시간 뉴스 채널이 있었는데, 매 30분마다 국내외 뉴스가 다양한 표현으로 전달되는 멋진 영어에 매료된 것이다. 특히, 야구나 미식축구 중계 때에는 피로 회복제가 되기도 했다. 영어 청취 비결의 하나는, 듣고 싶은 내용을 지속적으로 듣는 것과 자투리 시간을 100% 활용하는 것이다.
소수 민족은 별로
(10) 아랍 계통, 동양 계통, 남미 계통을 미국에서는 소수 민족이라고 한다. 이들과 영어 대화를 할 때 끈끈한 우정을 느끼게 된다. 거의 100% 알아듣고, 100% 제대로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토록 화기 애애한 분위기가, 갑자기 미국인이 등장하기만 하면 혀 꼬부라진 발음 때문에 눈앞이 캄캄해진다. 알고 보니, 내가 알고 있는 영어 능력이 그 소수 민족 사람들과 같은 수준의 영어로 떠드니 이해가 잘 될 수밖에 없던 것이었다. 서로가 모르는 단어는 쓰지 않으니 100% 이해와 돈독한 우정이 싹틀 수밖에 없다. 그 이후로는 소수 민족 친구들도 되도록 멀리 하게 되었다.
회화는 모방이다
(11) 1983년 11월, 8년만에 귀국한 후 얻은 첫 직업은 학원의 생활 영어 강사였다. 나는 지금도 12명 정원의 생활 영어 회화 수업은 반대하고 있다. 수십 명이 모여서 듣는 생활 영어 코스를 더욱 선호하고 있다. 강사 목소리를 앵무새처럼 따라하도록 시키는 것보다는 가급적 미국인의 녹음 테입을 큰 소리로 완벽하게 모방하도록 시키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다. 12명 정원제에서 대다수의 학생들은 한두 명의 튀는 학생들이 한시간 동안 설치는 것을 구경만 하는 들러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어휘는 Self-test
(12) 갑자기 어휘를 공부하고 싶은 욕구가 솟아 생활 영어 회화를 그만 두고 "Vocabulary 22,000"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영어 어휘는 누구도 피할 수 없는 한국인의 약점이다. 툭하면 밑줄 긋고, 무작정 몇 번이고 써가면서 암기하는데, 며칠 후 시험에서는 거의 몇 단어 밖에 건지지 못하는 비효율적인 학습법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나는 먼저 어원을 설명해 주고, 예문을 해설해 준 뒤, A4 용지를 어원과 예문으로 절반씩 나누도록 했다. 왼쪽에는 영어, 오른쪽에는 한글 번역의 형식으로 50문제를 출제한 다음, 한쪽을 가리고 다른 A4 용지에 정답을 써가면서 스스로 채점하는 방식(Self-test)을 채택했다. 그리고 수시로 pop test(졸지 시험)도 치렀다. 효과는 만점에서 조금 빠지는 99%였다.
쥐구멍은 곧 영어 실력 증강
(13) 어휘도 어느 정도 익혔기에 다음에는 TOEFL로 바꿔서 Listening(청취), Crammer(문법), Reading(독해) 세 분야를 모두 가르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강의 준비를 하느라 날밤 새우기가 일쑤였다. 모르는 것이 수시로 튀어나왔고, 예리한 질문들을 매끄럽게 답변하지 못 할 때는, 쥐구멍을 찾는 심정으로 일단 답변을 24시간을 연기시켜놓았다. 그런 날은 수북히 쌓인 참고 서적과 밤샘 씨름을 해야했다. 처음 공부를 시작하는 마음으로 닥치는 대로 연구하는 것이다. 선생이 연구할 때는 학생보다 몇 배나 더 공부하게 된다.
배움에서는 인격을 버려라
(14) 혼자 힘으로 해결이 안될 때는 소주 한 병을 사들고 대방동으로 달려간다. 나의 구세주이자 영어 천재이신 친구 아버님께서 알코올 중독자 수준이시기에 소주 한 병이면 영어 보물이 홍수를 이룬다. 그러나, 반가운 인사와 함께 온갖 욕설을 다 듣게 된다. 너 같은 놈이 무슨 영어를 가르치느냐, 미국 유학을 헛 다녀왔다, 학원 강사 집어쳐라 등의 온갖 핀잔과 욕설을 외에, 가끔은 주먹질까지 하셨다. 하지만, 나는 아버님의 명쾌한 해설을 듣기 위해 전혀 불평을 할 수가 없었다.
Puzzle은 순발력과 배경 지식의 보물
(15) 초창기에는 강의가 없는 낮 시간에 거의 매일 대방동을 찾아갔다. 한 달 후에는 일주일에 닷새에서 사흘로 줄었고, 두 달 후에는 일주일에 하루 이틀로 줄었고, 석 달 후에는 일주일에 한번 꼴로 줄어들게 되었다. 넉 달째부터는 오히려 아버님께서 전화로 독촉을 하셨다. 소주 좀 사오면 재미있는 영어를 가르쳐 주시겠다는 등등의 유혹(?)과 함께. 그 유혹이란 Crossword 퍼즐이었다. International Herald Tribune지에 나오는 Crossword는 세계적으로 가장 난해한 puzzle 중의 하나라고 하셨다. 그것을 10분만에 풀어내시는 모습을 감상하라는 것이었다. 그 후 나는, 매번 대방동을 찾을 때마다, 소주 한 병으로 들려주시는 영어 단어 배경 설명에 대한 새로운 감탄을 느끼게 되었다.
만화 영작은 최고의 영작 코스
(16) 대방동의 걸작품이라면 단연코 만화 영어가 최고였다. 고바우 영감, 두꺼비 등 주요 일간지에 연재되는 만화들의 초경량급 표현에 대해, 아버님처럼 명쾌하게 영작하시는 분을 평생 단 한 분도 못 보았다. 정말 천재적인 발상의 표현들이 줄을 이었다. 만화 영작이야말로 토플 L/C Part A의 핵심이자, 유머가 듬뿍 담긴 최상의 생활 영어 회화이다. 만약 지금 내가 갖고 있는 그토록 기발한 표현 방법을 어디서 배웠느냐고 묻는다면, 주저 않고 대방동 아버님이시라고 말하겠다. 너무도 완벽한 표현들에 매료되어 유사 표현을 몇 개씩 더 원할 때는 소주 두 명이면 OK였다. 미국 신문의 시사 만화 설명과 유사 표현 영작은 '황홀함' 그것이었다.
누구에게 배우느냐도 중요하다
(17) 1986년 11월 3일 '학생의 날'은 내게 가장 슬픈 날의 하나였다. 대방동 아버님께서 돌아가신 날이기 때문이다. 고교 동창생들 중 나를 가장 욕하셨고, 가장 많이 때리셨고, 가장 많이 사랑하셨고, 또 나를 가장 좋아 하셨다. 말년에는 망령이 심하셔서 정말 무수히 얻어맞았었다. 나의 영어 실력 향상은 1983년부터 1986년까지 3년 동안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돌아가시기 몇 달 전에 내게 하신 말씀이 기억난다. "가끔 내가 틀린 것을 네가 고쳐줄 때도 있으니, 그 정도면 이제 학원 강사라고 할만하다." 그날 가장 하염없는 눈물을 흘린 사람이 나라고 주위에서 말했다. 뇌 이식 수술이 이뤄지지 않은 것에 나는 지금 감사한다. 그것은 단기 완성이자 요행수에 불과하다. 요즈음도 영어가 막힐 때마다 나의 영원한 영어 스승님이신 대방동 아버님을 그리게 된다.
녹음기가 부서지도록
(18) 1983년 당시만 해도 녹음기가 무척 귀했다. 카투사 시절 미군 부대에서 형님께 사다드린 비싼 AIWA 녹음기를 임시로 빌려 학원 강의용으로 사용했다. 결국 6개월만에 고물상에 팔게 되었지만, 생활 영어 회화건, Vocabulary 22,000이건, 토플이건, 항상 그 녹음기를 사용했었다. 매 강의마다 10분 정도를 할애해서 AFKN 뉴스, 60 Minutes, ABC NIGHTLINE 등을 단골 메뉴로 강의해왔다. 녹음기 하나가 3개월을 버텨내지 못할 정도였고, 심지어 문법 문제조차 녹음으로 들려주었다. 모든 영어는 녹음하여 들려주고 읽히는 것이 최상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한가지에만 전념하라
(19) 영어의 주요 분야를 전반적으로 가르치면서, 나의 적성에 맞는 것은 Listening임을 느끼게 되었다. Listening만 가르치고 싶었으나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학원 강의 2년째가 되면서 학생 수가 수백 명으로 크게 는 상황에서, L/C 만을 고집한다면 결과는 뻔했기 때문이다. 주위에서는 한사코 말렸다. 조교들과 의논했을 때, 찬반으로 의견이 양분되었다. 결국, 나는 청취, 문법, 독해 종합반에서 L/C만을 강의하기로 중대 결단을 내렸다. 오전과 오후 합해서 18명으로 시작했다. 그로부터 다시 정상으로 복귀하는데 걸린 기간은 6개월이었다. 그 6개월 동안, 나는 청취에 관한 내 모든 것을 아낌없이 학생들에게 주어버렸다.
"AP 5분뉴스"는 청취 공포 해소제
(20) 토플 L/C를 잘하기 위해서는 역시 받아쓰기가 효과적이었다. 받아쓰기의 목적은 취약점 발견과 극복이다. 학원 강사 첫날부터 받아쓰기를 시켰고, 서울 올림픽 당시인 1988년에 극치를 이뤘다. 1991년에는 한국일보사 대강당에서 열린 제1회 받아쓰기 백일장에 500명이 참가했고, 1992년 한강 고수부지에서 열린 제2회 받아쓰기 백일장에도 500명이 참가했다. AFKN "AP 5분뉴스" 받아쓰기가 탄생한 것은 바로 이보다 몇 해 전인 1988년이다. 900단어를 5분 동안 떠들어대는 쾌속의 다양한 뉴스는 영어 청취에 대한 공포심을 제거해준다. 5∼6시간 걸리는 "AP 5분뉴스" 받아쓰기를 한번만이라도 해본 경험자들은 스스로 영어에 대한 가능성을 확인하게 된다.
토플과 토익의 차별화
(21) 1988년에는 자투리 시간에 TOEIC을 가르치기 시작했고, 드디어 1994년에 KBS TOEIC 1, 2, 3권을 출간하게 되었다. 토플이 미국 유학을 꿈꾸는 학생들의 영어 능력 평가 시험이라면, 토익은 직장인들 상대로 한 Business English라고 구분 지을 수 있다. 토플과 토익의 L/C 유형은 약간 차이가 있으나, 공부 방법상으로는 커다란 차이가 없다. 토익의 최대 약점은, 변별력이 약하여 점수와 영어 실력이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요령 하나로써 고득점 획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올바른 길잡이 연중무휴 토요무료특강
(22) 토요일이면 getaway weekend를 외치며 수많은 사람들이 경쟁적으로 교외로 빠져나간다. 대부분 재충전을 이유로 든다. 콩나물 시루 같은 도로의 수많은 차량과 인파 속에 묻혀서. 이들을 강의실로 끌어들이기 위해 나는 "연중무휴 토요무료특강"을 시작했다. 사람들이 강의가 마음에 들어 주말 약속을 취소하고 연기하거나 변경할 때, 나는 쾌감을 느낀다. 심지어는 날씨가 나쁜 경우 일요일에 강의해 주기를 바라는 경우도 있었다. 놀자판으로 향하는 발길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이 토요무료특강은 1988년에 시작되어 지금까지 10년이 넘도록 단 한번의 휴강 때문에 '연중무휴'라는 이름에 오점이 남아있다. 그것은 '정전' 즉 'blackout' 때문이었다.
부지런한 만큼 더 많이 배운다: SLC
(23) 하루 4시간 이상 잠을 잔다? 더구나 공휴일이나 일요일에? 안될 말이다. 하루 4시간의 수면이 가장 건강에 좋다는 의학 보고서를 읽은 적이 있다. "휴일 4시간 이상 잠자는 것은 눈뜨고 못 본다."라는 생활 철학 덕에 연중무휴 일요무료영화, 즉 SLC(Sunday Laser Club)라는 것이 1988년 탄생했다. 매주 일요일 '아침 7시 땡'이면 최신 Laser Disk 영화들의 감상 기회를 주자는 것이다. 학생들은 오전 10시를 줄기차게 요구하지만, 단호히 거부하고 있다. 시간이 남아돌아 모이는 100명의 학생보다는 진정 영화가 좋아 새벽 7시에 참석하는 50명의 뜻이 더 소중하기 때문이다.
상대를 아는 것이 핵무기
(24) 어느 토요무료특강 때였다. 미국 국가 가사의 배경을 설명하고 나서 힘차게 미국 국가를 합창했었다. 강의가 끝나고 30분쯤 후에 한 학생이 소주병을 들고 와서는, "왜 미국 국가를 가르치느냐"고 항의를 하는 것이다. 대꾸 없이 20분 동안 듣고 난 다음 대답했다. "넌 미국 유학을 꿈꾸며 내 토플 강의를 듣고 있어. 나는 너처럼 무조건 미국을 증오하지도 않고, 다른 사람들처럼 무조건 좋아하지도 않아. 영어라는 것 때문에 미국을 생각하고 있을 뿐이야. 미국을 알려면, 또 그들을 앞지르려면 그들에 대해 많이 알아야 될 것 아닌가?"라고. 이튿날부터 3년 동안 그는 조교로서 SLC를 관리하게 되었다.
인터넷 이용은 영어 성공의 지름길
(25) 신문, 잡지 등에 칼럼 쓰기, 그리고 방송 매체들과의 인터뷰 등은 공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된다. topic 선정 시에 인터넷을 뒤져보면 온갖 정보들에 대한 풍부한 자료들이 가득히 들어있다. 검색 과정에서 매번 느끼는 것은 모르는 것은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너무도 많이 모르니까 알아내 가는 재미가 생긴다는 것이다. 10년 전만 해도 신문과 잡지를 뒤적거리면서 지난 정보를 찾아내곤 했던 원시적인 방법을 생각해볼 때 감회가 새롭다. 요즘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정보를 구할 수 있다. 문제는 우리가 게으르다는 것과 과다한 정보로 인한 소화불량 때문에 이 정보들을 지식으로 소화해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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