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넘은 직장 생활 중에서 유일하게 아침형 인간으로 지낸 기간이 있다. 약 2년 정도의 기간이다. 7시부터 강남에 있는 영어 학원에 다녔다. 한 시간 동안 'AFKN 청취' 과정을 수강한 후에 출근했다. 지금까지도 그 당시 어떻게 그토록 꾸준히 아침 일찍 학원에 다녔는지 미스터리다. 40년 넘은 세월 동안 이렇게 일찍 일어나서 무언가를 꾸준히 한 적이 이 기간이 유일하다.
그 당시의 다짐은 이러했다.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거치며 10년 넘게 학교에서 공부했지만 그렇다고 정말 열심히 영어 공부를 해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직장에서 일할 때, 외국계 회사에서 입사 제안이 왔는데도 영어 때문에 지레 겁을 먹고 사양하기도 했다. 그래서 이런 결심을 했다. "더도 말도 덜도 말고 딱 6개월만 꾸준히 학원에 다녀보자." 이런 단순한 생각을 했다. 나중에 후회하지 않게, 미래의 나에게 '나는 그래도 6개월은 영어 학원에 꾸준히 다녔어'라고 말할 수 있게, 그래도 영어 공부를 했다는 '흔적'이라도 남기고 싶었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났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영어 청취 시간이 재미있어졌다. 그리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무언가를 하고 회사에 출근해도 8시가 조금 넘으니 기분도 좋았다. 하루를 알차게 시작하는 기분이었다. 이렇게 6개월의 다짐이 1년이 되고 결국은 2년을 넘게 학원에 다녔다. 그렇다고 학원에 다니면서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한 것도 아니다. 예습과 복습만 했어도 나의 영어 실력은 일취월장 했을 텐데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 그저 그 한 시간 (실제 50분) 동안에만 충실했다. 하지만 이 기간이 미국에서 10년 생활하면서 배운 영어보다 더 가치가 있었다. 나의 귀를 트여주고, 나도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게 가능하다는 '아침형 인간'의 가능성을 보여 주었고, 무언가를 2년 동안 할 수 있다는 '꾸준함'의 가치를 알려주었다.
같은 학원에 2년 동안 다니면서 그 당시 영어 강사인 '김재현' 선생님의 말씀이 기억에 남아 적어 두었다. 아래에 그 어록과 미국에 와서 10년 넘게 생활하면서 느낀 점을 버무려 적어본다.
"어순감각이 있어야 들린다."
우리가 영어를 배우는데 '발음'과 함께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이 바로 이 '어순'이다.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그 진의를 알 수 있지만, 영어는 본론을 먼저 이야기한다. 언어는 그 사회·문화적 정신을 반영하므로 이렇게 나라마다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어순감각을 어떻게 익힐 수 있을까? 가장 좋은 비법은 역시 '문장'을 익히면서 그 구조를 파악하는 것이다. 많이 읽고, 많이 듣고, 많이 말하고, 많이 쓰는 것이 비법 아닌 비법이다. 물론, 이를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비법이 있다. 그러나 핵심은 꾸준히 문장 표현을 익히면서 패턴을 파악하는 것이다.
문장 구성 요소인 1형식~5형식을 들먹이며 영어를 표현하면 영어 배우기가 재미없다. 그냥 자신의 전문 분야, 좋아하는 분야의 문장들을 많이 읽으면서 패턴을 자연스럽게 익히면 된다. 그렇다고 문법책을 보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다. 영어를 재미있게 흥미를 느끼고 지속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거다.
"단어실력이 영어의 반이다."
요즘은 예전보다 단어나 어휘의 중요성이 많이 줄어들었다. 회화 위주의 영어 교육으로 전환되고 어린 시절부터 영어를 접하다 보니 어휘에 대한 중요성이 강조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단어 실력의 향상 없이 영어 실력이 향상되기는 힘들다.
미국에서 한국계 미국인이 진료하는 병원(한국처럼 큰 대학병원이 아니라 보통 doctor's office라고 한다)에 간 적이 있다. 그 의사는 우리 아이를 진단하면서 한국어를 했는데, 말투는 초등학생 수준이었다. 아마 미국에서 태어나거나 성인이 되어서 미국에 건너왔을 것이다. 이렇게 같은 한국어라도 사용하는 단어나 말하는 표현에 따라 초등학생의 언어가 되기도 하고, 전문가의 영어가 되기도 한다.
영어도 마찬가지다. 초등학생들은 자신들이 아는 단어의 수준에서 표현할 것이고, 직장인·전문가들은 그에 맞는 표현을 쓸 것이다. 그렇다고 너무 단어 암기에 비중을 두어서는 안 된다. 결국 단어도 문장을 통해서 익히고 외워야 한다. 가장 좋은 것은, 숙어나 문장을 통째로 암기하는 것이다.
보통 미국인(20세 기준)이 사용하는 단어 수는 약 40,000단어라고 한다. 하지만, 일상 회화 생활에 쓰이는 단어는 5,000개, 글을 쓰는 데는 10,000개 정도면 충분하다. 그렇기 때문에 시험을 목표로 하지 않는 이상, 너무 단어 자체 암기에 시간을 투자하기보다 자신의 전문분야나 관심 분야의 문장들을 소리 내서 읽어보면서 익히는 것이 이상적이다.
"반복 숙달시켜라."
"계속 들어서 안 들리면 그냥 보고 외워서 숙달시켜라."
"자꾸 내면화(internalization)시켜라."
영어 공부에서 반복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필자의 영어 향상에도 미국에서 산 10년의 생활보다 한국 학원에서 2년 동안의 '반복' 훈련이 영어 향상에 더 도움이 되었다. 그렇다면 무엇을 반복하고 숙달시킬 것인가? 정답은 "자신에게 필요한 문장을 반복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아무리 좋은 약이나 음식도 자신에게 맞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영어 문장도 마찬가지다. 남에게 좋은 문장이라고 해서 자신에게도 유용하다는 법은 없다. 자신의 전문 분야가 '무역'이면 무역, '의료' 관련 종사자이면 의료 관련, '스포츠' 분야이면 스포츠 관련 문장을 익히고 숙달하는 것이 우선이다. 물론, 자신의 직업 분야가 아니라 취미나 관심 분야를 골라도 좋다. 핵심은 자신의 삶과 관련이 있고 좋아하는 분야의 영어 문장들을 외우고 숙달시키는 것이다.
문장의 내용을 보지 않고 영어 청취를 하면서 공부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여러 차례 들어도 무슨 단어인지 모르고 안 들리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는 그 단어 자체를 모르는 경우나 발음이 어떻게 되는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럴 경우 그냥 단어와 발음 기호를 보고 외우는 것이 상책이다. 외워서 반복 숙달시키는 경우, 제대로 된 발음으로 내면화시키는 것이 좋다. 요즘 미드나 유튜브 동영상 등 원어민 발음을 수집하기가 용이하니 최대한 원어민 발음을 흉내 내면서 내면화시켜라.
"실제로 발음해보고 느껴라."
"안다고 넘어가지 말라. 알아도 친숙해야 한다."
"매일 꾸준히 30분 이상씩은 큰소리로 읽어봐라."
영어에 대한 모든 비법 중에서 가장 중요한 진리다. 수영에 대해 이론적으로 열심히 공부하고, 설사 논문을 썼다 해도 물속에 들어가서 헤엄쳐 보지 않으면 수영이 될까? 농구를 좋아해서 NBA 프로 농구 선수들의 플레이를 보고 TV에 들어가 빙의가 되면 농구를 잘하게 되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 농구공을 들고 나가 매일 연습을 해야 실력이 든다. 골프와 같이 정신력 요소가 중요한 스포츠도 볼을 열심히 치지 않고 훌륭한 선수가 된 예는 없다. 한국인으로 PGA 신화가 된 최경수 선수도 연습 벌레였다.
영어도 이에 한 치의 어긋남이 없다. 물론, 필자는 '상상력'의 위대한 힘을 믿는다. 실제 스포츠 과학에서도 상상력을 통한 훈련이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근육 기억(muscle memory)'에 입력이 되어야 한다. 이 입력은 '눈'을 통한 입력이 아닌 '입'을 통한 입력을 말한다. 한국인의 경우, 눈을 통한 읽기(reading)는 많이 익숙한 편이다. 하지만 출력 분야인 말하기(speaking)와 쓰기(writing)는 읽기 보다 턱없이 부족하다.
이유는 단순하다. 학교에서나 평소에 말하기 훈련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물어보라. 하루 중 단 10분이라도 영어 문장을 소리 내서 읽어보는지…. 요즘은 영어 공부 방법이나 시중의 책들이 회화 위주로 넘어가서 젊은 세대들은 말하기에 익숙한 편이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의 공부 방법은 여전히 구시대적인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빅데이터를 분석해서 추출했다는 단어를 나열한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위에서 말했듯이, '단어 실력은 영어의 반'이라는 사실은 틀림없다. 하지만 이렇게 단어를 나열한 책을 보고 적어서 외우는 것은 시간 낭비다.
가장 중요하고 먼저 해야 할 것은 문장으로 글을 매일 '소리 내서' 읽는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의 글을 읽는 것이 가장 좋다. 짧은 스토리 위주의 글이 재미를 잃지 않고 지속할 수 있어서 좋겠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라면 전문 분야라도 좋다. 필자는 일과 연관된 기술 분야의 문서나 잡지, 책 속의 문장을 매일 '소리 내서' 읽는다. 하루에 15~30분씩 6개월 이상하면 영어에 사용되는 입 주변 근육이 부드러워지면서 발음도 부드러워진다. 이렇게 읽을 때는 평소의 목소리보다도 좀 더 높은 톤의 수준으로 읽으면 좋다. 이에 대한 이유는 아랫글을 참고하기 바란다. 발음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른 글에서 다루겠다. 요즘은 미드나 유튜브 등 원어민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경로가 많으니 흉내 낸다는 생각으로 연습하면 된다.
명심해야 할 것은 본인이 아는 단어나 문장이다 하더라도 '반드시' 자신의 입으로 직접 발음해보고 연습해야 한다. 가능하다면 여러번 읽어서 외우면 금상첨화다.
* 추가로 읽어보면 좋은 분석맨의 글: 영어 원어민은 목소리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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