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February 17, 2020

실리콘밸리의 상징인 HP의 추락을 보며 드는 '리더십'에 대한 생각


아래 제록스(Xeros)의 HP에 대한 공격적 인수에 대한 기사를 보고 SNS에 올렸던 글에 추가해서 '리더십'에 관한 생각을 적어본다.

"제록스, 인수제안 거부 HP 지분매입…이사후보 11명 추천 추진"
https://is.gd/D8V6rL

- 복사기·프린터 제조사인 제록스(Xerox)가 프린터·PC 업체 휴렛팩커드(HP)에 대한 적대적 인수를 추진 중이라는 월스트리트저널(WSJ) 보도다.
- 제록스는 작년 11월 시가총액이 3배 정도 더 큰 HP를 주당 22달러, 총 330억달러에 인수하겠다고 제안했으나, HP는 이를 거부했다.


  • 실리콘밸리의 생일

HP는 실리콘밸리의 상징이고, HP의 창립일이 실리콘밸리의 생일로 여겨질 정도로 IT 역사를 주도했던 회사다. 그러나, 컴팩(Compaq), EDS, 오토노미, 팜(Palm)과 같은 회사의 인수·합병으로 망가지고, 칼리 피오리나, 멕 휘트먼 등의 유명한 인물들을 CEO로 영입하여 구세주가 되기를 희망했지만 나락으로 치닫고 있다. 결국, HP는 지난 2015년 서버·스토리지 중심의 Hewlett Packard Enterprise(HPE)와 PC·프린터 사업 중심의 HP Inc.(HPQ)로 분사했다. 역사상 매출 기준 최대 규모의 기업 분할이었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HP Inc는 자기보다 시총이 3배나 작은 제록스에 먹잇감이 되고 있다. 2000년 당시 3대 공룡이었던 IBM, Compaq, HP 중, IBM은 하드웨어 제조에서 솔루션·컨설팅으로 환골탈태하면서 회생했는데, 실리콘밸리의 상징인 HP는 이렇게 비참한 지경이 되었다.

  • 애플의 탄생

고등학생이던 스티브 잡스(Steve Jobs)가 주파수 측정기를 만들다가 부품이 없어서 전화번호부를 뒤져 당시 거대기업인 HP CEO 빌 휴렛(Bill Hewlett)의 집에 전화하여 부품을 달라고 한 일화는 유명하다. 빌 휴렛은 스티브 잡스와 20분 동안 통화하고 부품을 주고, 여름 방학에 HP 주파수 측정기 조립라인에서 일하게도 해주었다. 애플의 공동 창업자이자 애플 컴퓨터의 대부분을 만들었던 스티브 워즈니악(Steve Wozniak)도 HP에 다니면서 회사 창고에서 남는 부품과 공구를 가져다 재미로 컴퓨터를 만들었다. 이를 본 스티브 잡스의 제안을 받아들여 애플을 공동 창업하게 된다.

이렇게 HP는 실리콘밸리에서 큰형과 같은 존재였다. 이런 HP가 이렇게까지 쇠락의 길을 걷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겠지만, 필자는 가장 큰 문제로 '리더십의 실패'로 본다.

  • 칼리 피오리나, 힘든 선택들

1999년 초 HP는 회사 설립 후 처음으로 외부에서 CEO를 고용한다. 더구나 그 당시는 흔하지 않은 여성 CEO인 '칼리 피오리나(Carly Fiorina)'. HP는 창립자가 세상을 떠난 뒤 시대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면서 휘청거렸기 때문이다. 이에 HP는 1998년 포춘지로부터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경영인'으로 뽑힌 스타 경영인이자 'IT 여제'로 불린 칼리 피오리나를 영입한다. 칼리 피오리나는 기존의 조직 문화를 바꾸고, 창업자 후손을 포함한 주요 주주들의 반대를 이겨내며 컴팩의 합병(2002년)을 성사시키는 등 HP의 부활을 주도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이는 IT M&A 역사에서 아주 큰 실패 사례로 꼽힌다. PC 사업은 서버나 소프트웨어 사업보다 마진율이 작아 델(Dell)처럼 유통 혁신이 없다면 회사에 큰 이익을 가져다주기 힘든 사업이다. 어쨌든, 이때부터 HP는 추락의 길을 걷는다.

AT&T나 루슨트라는 공룡 기업에서 경험이 있던 칼리 피오리나는 왜 HP에서 실패했을까? 당시 그녀는 실리콘밸리 기업 문화의 뿌리가 되었던 'HP Way'를 몰아내고 변혁하고자 했다. 피오리나는 기존 권력이 분산되어 자율성이 보장된 사업부 체제를 중앙집권체제로 전환하며 실적이 부진한 87개 사업부를 12개로 정리했다. 이런 파괴는 10억 달러의 비용 절감을 이루어냈지만, HP 기업 문화는 퇴색하고 정체성을 잃고 만다. 시장에선 그녀가 'HP Way'를 파괴하면서 비용 절감 성과를 이루었지만, '비전이 없었다고' 평했다. IBM은 PC 사업을 레노버(Lenovo)에 넘기며, '비즈니스 컨설팅'으로 변신했지만, HP는 '뚜렷한 비전' 없이 성장을 이루려 했다.

2005년 2월, 칼리 피오리나가 사임한 뒤에 '리더십의 실패'는 계속된다. 후임인 마크 허드는 800억 달러의 매출을 2010년 8월 퇴임할 때까지 1150억 달러로 상승시키고, 재임 기간 주당순이익(EPS)을 두 배 이상 뛰게 했다. 그러나, 마케팅 대행업체 여성 대표와 추문에 휘말리면서 불명예 퇴진했다. 이후, 2010년 CEO로 취임한 레오 아포테커는 실적 부진과 주가 하락 등 악재가 겹치면서 11개월 만에 해고되었다.


※ 책 '칼리 피오리나 힘든 선택들'
2008년에 이 책을 참 재미있게 읽었다. 그녀의 자서전에 가까운 이 책은 그녀가 여성으로 말단 사원으로부터 최고 경영자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는지, 생생하게 잘 묘사하고 있다. 비즈니스와 리더십에 관한 수많은 경험들이 잘 녹아있는 책이다. 특히, HP가 파트너인 한국 기업 '럭키 금성'에 가서 미팅하고 기생 파티에 참석하는 내용은 참 인상적이어서 기억에 남는다.

  • 멕 휘트먼, 더 작은 기업을 경영하고 싶다

이후 HP는 구원 타자로 이베이 CEO로 이름을 날리고,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 떨어진 멕 휘트먼(Meg Whitman)을 영입한다. 휘트먼은 2011년부터 2017년까지 약 7년 동안 고군분투 하지만, 결국 HP는 2015년 11월 1일 프린터·PC 사업부가 포함되는 지주회사 격인 'HP 주식회사(HPQ)'와 기업 하드웨어·서비스를 담당하는 '휴렛패커드 엔터프라이즈(HPE)'로 분사한다. 델(Dell)이 EMC와 2016년 합병하며 덩치를 키워나가는 것과 대조가 된다.

휘트먼은 “더 작은 규모의 기업을 경영하고 싶어 하는 CEO는 아마도 미국에 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하며 큰 기업 경영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베이와 같이 빠르게 성장하는 회사와는 다르게 덩치 큰 HP를 성장시키기에는 힘에 부쳤을 것이다. 아무튼, 그녀도 동료로부터 “실행력은 있지만, 비전이 부족한 금융 공학자”라는 칼리 피오리나와 비슷한 평가를 받으며 2017년 말 HPE CEO를 사임하게 된다. 결국, 그녀는 2018년 말 작고 성장성이 있는 스타트업 '퀴비(Quibi)'의 CEO가 된다.

  • 글로벌 IT기업들, 인도계 CEO 전성시대

최근 아래 기사와 같이 인도계 CEO들이 부상하고 있다.
글로벌 IT기업들, 다시 인도계 CEO 전성시대

리더 한 명으로 기업이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다. 빌 게이츠 이후, 스티브 발머 하에 갈팡질팡하던 마이크로소프트를 극적으로 회생시킨 인도계 CEO '사티아 나델라'가 주목받고 있다. 2010년 나델라 취임 전, 마이크로소프트의 상황이 어땠는지는 아래의 카툰 한컷이 잘 말해주고 있다.

나델라는 이렇게 회상했다.

“…오랫동안 경쟁상대가 없었던 탓에 결국 어떤 변화를 맞이했다. 긍정적인 변화는 아니었다. 관료주의가 혁신을 대체했다. 사내정치가 팀워크를 대신했다. 우리는 낙오했다. 이런 어수선한 시기에 한 만화가가 MS 내부 상황을 그렸다. 만화 속 직원들은 마치 이권 다툼을 하는 조직폭력배처럼 서로에게 총을 겨누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CEO 자리에 오른 나델라는 이렇게 경쟁하던 조직 문화를 바꾸고 2018년 애플을 제치고 16년 만에 전 세계 시가총액 1위 기업으로 올라서게 된다. 쿼츠(Quartz)의 한 아티클에서는 그에게 13만 명 이라는 직원을 실은 배의 방향을 바꿀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조직 문화'를 바꿈으로써 가능했었다고 말하고 있다.

2015년 비지니스 인사이더와의 인터뷰에서 나델라는 아래와 같은 말로, '성공 지표'에 연연하지 않고 '조직 문화'를 바꿈으로써 마이크로소프트를 재도약하게 만든 철학을 잘 표현했다.


"그동안 성공지표라 믿으며 MS가 질질 끌려왔던 매출, 이익과 같은 단어를 더 이상 얘기하지 않는다.이제 성공의 지표는 고객들의 사랑(Customer Love)이다. 고객들이 우리 제품을 사랑한다면 나머지는 따라온다."

이렇듯 필자가 '훌륭한 리더십을 가지고 있다'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리더는 단기성과에 집착하지 않고 직원들이 '비전'을 갖고 서로 '협력', '성장'하며 개개인의 잠재력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문화'를 만들어주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스티브 잡스도 애플의 DNA '미친듯이 심플(Insanely Simple)'을 가지고 애플을 부활시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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